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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w. 익명1

불판을 가득 메우고도 남아 식탁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고기와 비면 다시 채워지고 차면 다시 비기 바쁜 술잔, 탁자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무수한 빈 병, 그리고 그 중심을 차지한 케이크. 주인공이 도착하기도 전부터 이미 벌어져 흥분으로 치달은 술판을 한숨을 쉬며 내려다보았다. 종국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테이블의 중심으로 끌려갔고, 그 주위에 둘러앉은 이들은 술잔을 부딪칠 때마다 웃으며 축하를 외쳤다. 그리고 다시 소리 높여 웃고 떠들었다. 종국은 이 상황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에 잡힌 주름이 풀릴 줄을 몰랐다.

종국은 원래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생일은 그저 태어난 날이었고, 그보다는 어머니가 고생하신 날이었다.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연락이나 드리면 끝인 날이지, 자신이 챙김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어릴 때부터 항상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축하를 담은 수많은 연락도, 차고 넘칠 만큼 많은 케이크와 선물도 결국 모두 쑥스러움만 되었다. 그는 좋은 사람들과 모여서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긴 했으나, 그 이유가 자신의 생일이라면 언제나 사양이었다. 그러니까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보란 듯이 인상을 쓰고 질색하는 것은, 싫다기보다는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 것이었다.

그의 생일은 모임을 잡을 핑계이자, 그에게 술 먹일 핑계일 뿐임을, 질색하는 종국이 재밌어 일부러 더 축하의 말을 뱉는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종일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다 술자리에서까지 들리는 그 말이 그는 불편했다.

“형, 언제까지 그렇게 인상만 쓰고 있을거야?”

불콰하게 술이 오른 동훈이 비틀대며 종국의 곁으로 다가왔다. 술에 먹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 모습을 한심한 듯 지켜보다

가, 눈앞에 들이미는 머리를 힘껏 밀었다. 술에 의해 무서울 것이 없어진 동훈은 그에 개의치 않고 다시 달려들었지만.

“야 이 시끼야, 저리 안 가?”

“아 형~ 생일 축하한다니까, 진짜?”

한참을 그렇게 밀고 다시 들러붙는 소모전이 반복되었고, 결국 먼저 포기한 사람은 종국이었다. 술 취한 사람은 아무리 그라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귀에다 대고는 생일 축하만 외쳐대는 동훈을 애써 무시하고, 종국은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어 한 모금 가득 들이켰다. 그러자 날아오는 왜 혼자 마시냐는 핀잔과 빈 잔을 다시 채우는 손길. 이어서 자신들의 잔도 들어 올리며 외치는 ‘종국이형의 생일을 위하여!

그 모습에 종국이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비웠던 잔을 다시 들어 올려 입안에 털어 넣었다. 주위를 둘러싼 이들이 자신에게 가진 명백한 애정에 불편함이나 쑥스러움은 뒤로 제쳐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애정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그들과 함께 어울렸다.

술을 곁들인 그들의 수다는 끝나지 않고 몇 시간째 점점 고조되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어진 술자리는 동이 틀 때가 다되어서야 끝이 났다. 술이 머리끝까지 올라 앞뒤 분간도 못 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집으로 돌려보내고서야 종국도 겨우 집으로 향했다.

* * *

집은 고요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집의 정적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방금까지의 소란스러움은 거짓인 듯 적막함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집은 즐거워야 마땅할 텐데, 어쩐지 어색하고 혼자라는 사실이 외로웠다. 종국은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자신답지 않은 이런 감상은 모두 술의 탓으로 돌려버리고, 종국은 소파에 몸을 묻었다. 사무치는 고독과 탈력감을 어떻게든 즐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울에 빠진다고 바뀌는 것은 없으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가라앉은 기분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움직이는 법마저 잊은 듯 오래도록 소파에 스스로를 파묻었던 종국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처음으로 한 일은 핸드폰을 잡는 것. SNS에도, 메신저 앱에도, 그리고 문자에도. 무섭도록 쌓인 축하 메시지가 가득했다. 단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팬들의 메시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팬카페에서, 그 외에 많은 방식으로. 여러 사람이 여러 나라의 말로 그에게 남긴 말들을 종국은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종국은 이러한 사랑이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일이 무어라고 이렇게까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축하를 해주는 것인가. 술자리에서도 그랬듯, 팬들의 마음 앞에서도 그는 그 마음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겸연쩍어 어색했고 제대로 돌려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미안했다.

그러나 애정 어린 말들을 읽어내려가는 종국의 곁에서, 어느덧 고독은 자리를 비운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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