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축하하지 않는 생일
w. 레트
일 년마다 꼭 돌아오는 날이 있다.
저에게 생일은 어떤 날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생일이라고 마구 축하해주는 집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올해도 4월 25일은 돌아오고 또 돌아왔다. 또다시, 휴대전화의 시각이 23:59에서 00:00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낯간지러운 메시지들이 몰려올 줄 알았다.
손에 쥐고 있는 휴대전화는 아무런 소리도, 진동도 없이 조용했다.
종국은 가만히 잠금화면을 바라보았다. 산 이후로 바꾼 적 없는 기본 배경화면에 쓰인 하얀색 글자는 제가 잘못 읽은 게 아닌 이상 분명히 4월 25일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이걸 왜 신경을 쓰고 있지?`
그 날짜를 바라보았던 것도 잠시, 종국은 도로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처음 몇 분간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십여 분이 흘렀다.
이쯤이 되면 꼭 전화를 걸어오는 지인들이 있었다. 이럴 때 말고 평소에 잘하라고 투덜대도 결국 또 생일은 잊지 않고 축하해줘야 한다며 전화하는 동생들이었는데. 퉁명스레 말을 건네긴 했지만 모두 따뜻한 목소리였다. 생일 축하받는 것이 민망하다 하더라도, 지인들에게서 오랜만에 오는 따뜻한 연락은 아무래도 반가운 법이었다.
그런 전화조차도 없었다.
신경 쓰이는 자신이 이상했다. 생일은 원래 내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지, 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는데. 매년 오던 연락이 갑자기 하나도 오지 않으니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종국은 결국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인스타그램의 아이콘을 눌렀다. 첫 화면은 어제 봤던 게시물들과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알림 탭에 들어갔다. 새로 고침을 해 보아도 새로 온 알림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히 며칠 전부터 요란하게 이것저것 생일 관련 글들을 올리던 팬들의 태그가 보였던 화면이었는데.
종국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스스로 생일 축하받는 것을 민망해하고 쑥스러워하고, 그걸 팬들이 모두 안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생일을 축하하던 사람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어쩐지 불안한 일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을 되짚어 보아도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종국은 몇 번 더 새로 고침을 해보았다. 문득 그때, 새로운 DM이 왔다는 표시가 떴다.
요청 1개.
종국은 그 타이밍에 자신에게 온 메시지가 궁금해서 그 메시지를 꾹 눌렀다. 어느새 그의 손은 달달 떨리고 있었다.
[ 왜 태어났니? ]
[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
과거에 들었던 소름 끼치게 싫었던 목소리가 글자에 덧입혀졌다. 그리곤 귓가에 울렸다.
.
.
.
"허억…."
종국은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났다.
역시 현실이라기엔 너무나 이상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종국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말들이 아직 가슴 한편에 남아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 그 목소리를 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아직도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랑받지 못하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기대가 많으면 실망도 많아지게 된단 걸 너무 어릴 때 깨달아서, 그 이후론 의식적으로 기대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한 번 심어진 트라우마는 쉽게 낫지 않았다.
종국은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냈다. 그럼과 동시에 익숙한 알림 소리가 울렸다.
저절로 켜진 휴대전화 화면에는 끝이 다 보이지 않는 생일 축하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종국은 천천히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 사랑하는 김종국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 Happy Birthday To Kim Jong Kook! ]
[ 형, 생일 축하드려요~~ ]
하나같이 낯간지러운 말들뿐이었다. 종국은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아까 이상한 꿈을 꿔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결국엔 이런 거 하지 마, 라며 투덜대는 답장을 쓰겠지만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정다운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는 아직 한참 남아있는 많은 축하 메시지들을 내려보았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아팠던 기억들보다 지금의 행복한 기억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는 중이었다.